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8.01.22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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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 불러야 하는 거니

바람 한 점 없는데

어쩌자고 마음이 흔들리니

구름은 수천 평 감자밭을 떠메고

언덕 너머로 가는데

아슴아슴 따라가 보는데

잃어버린 호미자루처럼

어린 날, 어디에다 흘리고 왔나

지독히 쓸쓸한 냄새 때문에

꽃아 꽃아 불러도

목소리는 안으로만 휘감긴다

흙속에선 감자가 굵어가고

나 희끗희끗 나이를 먹네

감자꽃 수천 평

흐드러졌다는 말은 틀린 말

그냥 희끗희끗할 뿐이네

 

- 고명자의 ‘감자꽃’ 전문

시집 「술병들의 묘지」에 수록

 

 

*

혹시 밭이나 들판에 가서 감자꽃이 군락을 이루어 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하나의 개체로 있을 때나, 무리로 있을 때나 감자꽃의 존재감은 확 드러나지 않는다.

꽃도 작고 흰색인데, 꽃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모양과 색을 하고 있다. 빛나는 흰색도

아니고 황사가 묻은 듯 희끄무레한 흰색이라 여럿 모여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가령 부추꽃은 작고 여리고 희지만 같이 모여 있으면 빛이 난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게 한다.

감자꽃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그 희미함 때문에 보이자마자 곧 잊힌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건 슬프다.

나이 들어가는 한 여자의 生을 감자꽃에 비유해 그 쓸쓸함을 표현했다.

희끗희끗 슬픔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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