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륜 칼럼] 추모제를 마치며
[신병륜 칼럼] 추모제를 마치며
  • 박정애 기자
  • 승인 2018.10.14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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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진 열사 30주기·민족효원 열사들
신병륜 논설위원/부산대 민주동문회장
신병륜 논설위원/부산대 민주동문회장

어제는 한글날이고 내가 52년 전 태어난 날이다. 저녁에 부산대 새벽별 도서관앞 민주언덕에서 양영진열사 30주기 및 민족효원 열사 다섯 분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행사가 열리기도 전에 30주기를 지내는 양 열사 가족들이 도착했고 우리 민동 회원들도 하나 둘 도착을 했다. 특히 양열사의 작은 누나가 창원에서 빵집을 하기에 단팥빵, 롤케익등 다양하고 많은 빵들이 제사상 옆에 큰 자리를 차지했다. 조금후에 부산의 시민단체 원로 어르신들도 도착하였고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민동 회장인 내가 상주로서 먼저 열사들에게 절을 올리며 "추모제 이전에 제 생일이어 기쁘지만 30년 전 열사는 비민주적인 정권에 맞서기 위해 큰 결심을 한 날이었고 우리는 그 날을 잊지 말자고 하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

오늘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열사들을 생각하며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의 기상이 깃든 부산대에서 추모 행사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양 열사의 듬직한 30대 조카들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신보다 어린 22살에 민주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삼촌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열사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동문들이 인사를 올렸다. 양 열사가 남긴 유언장을 낭독할 때 30년 전의 슬픔이 그대로 가슴에 맺혔고 작은 누나가 동생이 죽고 지난 30년간의 아픔을 말할때는 모두들 숙연하고 눈물을 흘렸다. 재학생 후배가 '편지3'이라는 노래를 열사들에게 보내고 열사들을 생각하며 모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마지막으로 하얀 국화를 민주 언덕의 조각상에 여기저기에 올려놓았다. 

조촐하지만 경건한 추모제를 마치고 양 열사가 몸을 던진 재료관으로 걸어갔다.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30년 전 그 날의 슬픔이 너무 커서 열사의 큰 누나는 그 자리에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앉아서 눈물만 흘리고 작은 누나는 동생의 마지막 숨결이 있던 그 자리를 볼 용기가 없어 찾아오지 못했다. 작은 촛불과 준비한 꽃다발을 열사가 자결한 곳에 놔두고 가족들과 동문들이 묵념을 했다.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30년전의 아픔을 되새기며 이제는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같이 오고 싶어서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영진아 사랑해"를 외치며 양영진 열사 30주기 행사를 끝마쳤다. 

학교 앞에서 양열사 가족들이 마련해 준 식사를 했고 많은 빵들을 모두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었다. 1시간여 동안 같이 밥을 먹고 나는 영진의 작은 형이 운영하는 화명동 가게에 가서 가족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해운대로 귀가 했다. 지난 8월에 그나마 가족들에게 열사들의 명예졸업장으로 그분들의 30여년의 긴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랬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분들에게 그 아픔이 얼마나 사무쳤을까는 자식을 낳아 키워보고서야 더 많이 느낄수 있었던 같았다. 

오늘 추모제를 준비한 민동 사무국과 가족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집 대문을 열고 찾아올 동생을 생각하는 열사들의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에게 너무 큰 슬픔이지만 이제는 살아남은 자로서 열사들이 죽음으로서 남긴 숙제들을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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