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한계산성 깊이 들어갔다가
나무 이파리 덮고 누운 토끼의 주검을 보았다
희고 가늘게 육탈된 뼈를
그의 마른 가죽이 죽어라고 껴안고 있었는데
그 검고 겁 많던 눈이 있던 자리에
어린 상수리나무가 집을 짓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몸속으로 들어올 때
그는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나를 내줘야 할 때가 온다면
나도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
- 이상국 ‘한계산성’에 가서 -
* ‘한계산성’이라는 이름도 우연히 선택된 것 같지 않다.
한계, 경계선으로 구분 짓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 이편과 저편
그러나 경계가 확연히 구별되는 듯하지만
어쩌면 생과 사는 이어져 있고, 마디나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다.
나부뿌리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몸 속 깊숙이 들어와 있듯
삶 속에 죽음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한몸이란 걸 느끼게 한다.
어느 날 산 속 깊숙이 들어가서 육탈된 짐승의 뼈와 마저 놓지 못한
생의 집착 같은 마른 가죽을 본다면
거기서
내게 내장된
죽음의 모습과 마주보게 될지도 모른다.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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