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위에 詩 한 칸
지상 위에 詩 한 칸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8.01.30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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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한계산성 깊이 들어갔다가

나무 이파리 덮고 누운 토끼의 주검을 보았다

희고 가늘게 육탈된 뼈를

그의 마른 가죽이 죽어라고 껴안고 있었는데

그 검고 겁 많던 눈이 있던 자리에

어린 상수리나무가 집을 짓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몸속으로 들어올 때

그는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나를 내줘야 할 때가 온다면

나도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

 

- 이상국 ‘한계산성’에 가서 -

 

 

* ‘한계산성’이라는 이름도 우연히 선택된 것 같지 않다.

한계, 경계선으로 구분 짓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 이편과 저편

그러나 경계가 확연히 구별되는 듯하지만

어쩌면 생과 사는 이어져 있고, 마디나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다.

나부뿌리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몸 속 깊숙이 들어와 있듯

삶 속에 죽음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한몸이란 걸 느끼게 한다.

어느 날 산 속 깊숙이 들어가서 육탈된 짐승의 뼈와 마저 놓지 못한

생의 집착 같은 마른 가죽을 본다면

거기서

내게 내장된

죽음의 모습과 마주보게 될지도 모른다.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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