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아직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
[안수효 칼럼] 아직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19.09.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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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었는지 점검해야
안수효 논설위원(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안전전문가 )
안수효 논설위원(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안전전문가 )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2014년 2월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2014년 2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사회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회복지 제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노출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제도적 허점상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도입됐으나, 이는 땜질 처방에 불과하여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시민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요구받고 있다.

지난 7월 31일에는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북한이탈 여성이 6살 된 아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신중한 입장이지만 굶어 숨진 아사(餓死)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을 발견한 사람은 수도검침원으로서 계량기를 확인하러 갔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 관리사무소에 신고하면서 비극적인 모습이 두 달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고는 했다. 국민1인당 GDP가 3만3천 달러, 무역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접어든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뉴스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여섯 살배기 작은 생명이 굶주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안전보장망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굶어서 죽어갔는데도, CCTV는 눈이 빠져라 들여다 불 줄 알았지 굶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인과 결혼한 이 여성은 2019년 1월 중순 남편과 이혼한 이후 어떠한 소득도 없었지만 기초생활수급 과 한 부모가정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다.

사망한 북한 이탈여성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공무원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이혼한 남편은 이미 중국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서류 한 장 받기 위해 중국을 다녀오라고 요구한 공무원이 있었다.

법원의 이혼서류를 제출했지만 필요 없었다. 법원의 서류조차 믿을 수 없다는 공무원이다. 한씨의 여섯 살 아들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받지 않으려고 해 한씨는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구제해 주어야 할 공무원들이 사다리를 끊어 놓지는 않았는지 개탄스럽다. 지자체 공무원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가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민 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소득인정액이 0원인데도 이들 모자는 기초급여 등 다른 복지급여가 연계되지 못한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복지제도는 수혜자가 신청을 해야 만이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공무원이라면 정보가 부족하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면 적극 찾아내는 것 또한 공무원의 의무이기도 하다. 정부가 지난해 8월 충북 증평군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 가구 발굴 대책을 강화하고, 사회복지 공무원 2892명을 채용했지만 한씨의 경우 두 달 가량 사망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었는지는 이번 사고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수개월째 수도요금을 내지 않았고, 전기요금이 18개월 밀렸었다. 월세·공과금은 18개월치 480만원이 체납 되었는데도 최소한의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제도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에 의해 운영된다. 하지만 사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앞으로는 제도미비로 인한 문제점 보다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작동 하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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