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사업회 '4.11민주항쟁' 비판에 김주열사업회 "역사왜곡" 반론
허성무 시장 “김주열열사 4․19혁명 도화선, 민주주의 수호 결의" 다짐
62년전 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명사적인 명칭을 둘러싸고 창원 마산지역 시민단체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3.15부정선거에 전국적인 항의가 일어나는 가운데 마산지역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이때 최류탄을 눈에 맞고 바다에 빠졌던 고교생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앞바다에서 떠오르며 국민적인 공분을 사게 된다.
이후 마산지역에서도 강력한 시위가 연일 벌어지게 되고, 결국 19일 정권이 붕괴되는 민주혁명이 만들어진다. 이런 일련의 현대사를 4월민주항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마산지역에서는 때아닌 '4.11민주항쟁'을 둘러싼 역사명칭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3.15의거기념사업회가 각급 기관에 보낸 ‘3.15의거 명칭에 대한 협조요청’ 공문에 대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역시 공문으로 의견을 내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3.15특별법의 정확한 명칭은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 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 2조에서 정의한 3.15의거는 1960년 3.15부정선거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3.15, 4.11, 4.12, 4.13 4.25, 4.26 등 크고 작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즉 그 대상 범위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3.15특별법에는 각각 다른 날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모두 '3.15의거'라는 명칭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그 법에는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주장하는 '제2차 3.15의거'라는 용어는 없다. '제2차 3.15의거'는 김주열 열사 시신이 발견된 4월 11일에 당시 분노한 마산 민주시민들이 이승만 정권과 싸운 항쟁의 날이므로, '4.11민주항쟁'이라는 용어는 매우 자연스러운 명칭이며,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4.11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을 두고 3.15사업회가 역사 왜곡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3.15사업회가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는 반론이다.
김주열기념사업회는 '3.15를 반토막 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3.15사업회야말로 3.15역사를 반토막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3.15사업회가 주장하는 '제2차 3.15의거'라는 용어는 지금 시민들이나 후대들이 3.15의거가 마치 하루만 있었던 의거라고 이해하기 십상이다.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일어난 마산시민들의 항쟁은 곧바로 4.19혁명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실상 3.15의거는 이승만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과 빨갱이 몰이'로 그 열기는 거의 꺼져버린 상태였다"고 주장한 김주열사업회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3.15의거를 4.19혁명으로 이어준 역사적 사건이 바로 '4.11민주항쟁'이다"며 "이 역사를 3.15사업회는 어떤 의도인지 몰라도 고의적으로 4.11항쟁을 축소하고 왜소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야말로 3.15사업회가 3.15역사를 반토막내는 짓"이라는 질타이다.
김주열사업회는 "3.15사업회는 우리 단체를 마치 불법이라도 저지른 듯 말하며 음해하고, 사업을 방해하고 있음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3.15의거 역사의 주인은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아니라 시민"이라고 역설했다. "시민들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해 그에 합당한 역사적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라는 주장이다.
이어 "3.15의거기념사업회가 '4.11민주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유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는 군사독재권력이나 하는 짓"이라며 "대한민국에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부여한 명칭에 대해 그 어떤 규제와 처벌을 하는 법은 없다. 참고로 3.15사업회가 자랑하는 3.15정신은 자유, 민주, 정의"라고 상기시켰다.
한편 지난 11일 창원특례시는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김주열 열사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추모식에는 허성무 창원특례시장을 비롯해 김주열열사 기념사업회원 및 용마고등학교 학생, 남원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장, 민주화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해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김주열 열사는 1960년 ‘3・15의거’에 참석해 실종됐다가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게 했다.
시는 김주열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념하고자 해마다 마산중앙부두에서 개최하는 추모식을 지원하고 있다. 2019년부터 민주화유적지로는 최초로 경남도문화재로 지정된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의 환경정비 사업을 추진해 지난해 추모의 벽과 열사의 동상을 설치하고 제막했다.
허성무 시장은 추모사에서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와 오는 13일 착공하는 ‘창원 민주주의전당’으로 인해 창원특례시는 민주성지로서 전국에 명성을 떨칠 것이며 민주발전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며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임무를 다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